제목 국내 3대 부인암 정복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산부인과 이정원 교수
등록일 2015.12.31 조회수 8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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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수의 깨끗한 물도 흐르다 고이면 썩기 마련이다. 풍부하고 깊은 지식과 경험을 갖췄어도 변화하는 세태에 따르지 못하면 뒤처진다. 의학도 마찬가지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치료방법과 수술기법을 습득하지 못한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이정원 교수가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는 이유다. 그는 진료가 없는 토요일에도 매일 출근해 논문을 쓰고, 공부한다. 한 분야의 최고의 자리에서도 끊임없이 배움을 강조하며 3대 부인암 치료에 매진하는 이정원 교수. 그를 만났다.

 


다이나믹한 수술 현장에 이끌려 선택한 산부인과
그곳에서 만난 3번 재발한 난소암 환자

 

산부인과는 크게 ‘산과’와 ‘부인과’로 나뉜다. ‘산과’는 임신과 출산을, ‘부인과’는 더욱 세분되어 양성 생식기 질환을 다루는 ‘일반부인과학’, 악성 생식기 종양을 다루는 ‘부인종양학’, 불임, 폐경, 호르몬 이상을 다루는 ‘생식내분비학’, 배뇨 이상, 골반 장기 탈출증을 다루는 ‘비뇨부인과학’으로 나뉜다. 그중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이정원 교수의 전공은 ‘부인종양학’이다.

 

 

“여성 생식기에는 난소암, 나팔관암, 자궁내막암, 자궁육종, 자궁경부암, 질암, 외음부암 등이 발생합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우리나라 3대 부인암인 자궁경부암, 자궁내막암, 난소암 수술을 집중 진료합니다.”

 

남자의사로서 산부인과의 길을 걷기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터. 그는 수의사인 아버지의 강력한 권유로 의대에 진학했고 이후 다이나믹한 산부인과 수술 현장을 경험한 후 진로를 결정했다.

 

“일반적으로 외과에서 시행하는 수술의 경우 워낙 스케일이 크고 급박해 당시 인턴은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반면 산부인과는 인턴도 수술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는데 당시 수술장의 다이나믹함에 매료됐습니다.”

 

역동적인 수술 현장에 이끌려 산부인과를 선택했다는 이정원 교수. 지금까지 많은 수술을 했지만, 그에게 강한 기억을 남겨준 환자가 있다고 한다.

 

“같은 부위에 3번이나 난소암이 재발한 젊은 여성 환자였습니다. 3번째 재발했을 때는 암이 방광을 넘어 다리 혈관까지 침범한 상황이었습니다. 환자분의 나이가 젊기에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약속하고, 보통 난소암은 항암 치료와 수술만 하는데, 마지막 수술 후에는 재발을 막기 위해 방사선 치료까지 했습니다. 그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1년 이내에 계속 재발해왔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2년이 넘도록 재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발병률은 낮지만, 재발률이 높은 암이기에 환자뿐만 아니라 이정원 교수에게도 엄청난 도전이었다고 한다.

 

 

“총 3차례의 수술을 거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담당의사인 저를 믿어줘서 참 고마웠던 환자분이었습니다.”

 


의학지식 업데이트하며 표준 지침에 따라 치료해야 훌륭한 의사

 

이정원 교수는 진료가 없어도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아침 9시에 출근을 한다. 오후 4시까지 근무하는데, 하는 일은 주로 논문을 쓰거나 머리 쓰는 일들이다. 직업 특성상 최신 지식습득은 필수다.

 

“하루가 다르게 치료와 수술 방법이 변합니다. 옛날 것만 고집한다면 도태되기 십상입니다. 훌륭한 의사는 의학지식을 업데이트하면서 표준 지침에 따라 치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정원 교수는 최신 치료나 수술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스스로도 새로운 수술법이나 치료방법을 개발하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례로 이정원 교수의 주 진료분야 중 하나인 자궁경부암은 암 중에서 유일하게 예방백신 개발에 성공한 암이다.

 

“조기 진단과 백신 덕에 자궁경부암이 감소하는 추세다 보니 우스갯소리로 ‘머지않아 밥 굶을 날이 올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의사들이 할 일이 없는 시대가 와야 연구하는 사람도 보람을 느끼고 환자도 행복하지 않을까요? 그런 날이 올 때까지 연구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자궁경부암은 현재 여성암 중 전 세계적으로 사망률 2위를 기록하고 있다. 2분에 1명꼴로 자궁경부암 환자가 사망하는 셈이다. 우리나라도 일 년에 약 4,000명의 신규 환자가 생기고 있는데 이 중 4명 중 1명꼴인 1,000명가량의 환자가 사망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10대에 예방접종을 하고, 20대 이상부터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는다면, 자궁경부암의 발병 및 발전 위험성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난소암 신약 개발에 매진
환자 돌보며 연구하는 임상의사로 남고 싶어

 

이정원 교수는 소박한 꿈 하나를 가지고 있다. 나이가 들어도 지금처럼 연구와 수술을 하며 학생을 가르치는 평범한 의사로 남는 것이다.

 

“보직이나 대외적인 직함을 맡으면 너무 바빠져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그저 아침에 출근해서 환자를 돌보고, 연구하고, 논문 쓰는 평범한 의사이고 싶습니다.”

 

 

이정원 교수의 작은 소망에 걸맞게 그는 2007년 5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미국 MD Anderson 암센터에서 방문 조교수로 근무했던 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제가 임상 의사지만 예전부터 기초 연구에 관심이 많아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싶었는데, 국내에서는 그런 기회가 별로 없어 벽에 부딪힌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MD 앤더슨 암센터에서 닥터 수드(Dr. Sood)라는 인도 출신 의사를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닥터 수드는 부인암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이다.

 

“그분께 동물 실험을 많이 배웠습니다. 이후 2009년 7월 <난소암 치료를 위한 표적분자항암치료제 EphA2-면역접합체> 연구 논문에 제 1저자로 참여해, 미국 유명 학술지인 에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이 논문을 통해 이정원 교수는 EphA2-면역접합체가 난소암 생쥐 모델에서 탁월한 치료 효과를 보였음을 밝혔다. 그렇다면 아직까지 생존율이 40%에 불과해 난치암으로 여겨지고 있는 난소암 치료제 개발도 머지않았다는 것일까?

 

“정상세포까지 공격하는 기존의 항암제와 달리 표적치료제는 난소암이나 자궁경부암에 특징적으로 잘 발현되는 표적을 정해서 그 부분만 선택적으로 죽입니다.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표적치료제에 대한 연구와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이정원 교수는 현재 삼성서울병원의 난치암 정복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난치암 사업단’을 통해 난치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아바타 마우스(Avatar Mouse)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난치암 환자의 샘플을 뽑아서 마우스에 심은 다음 그 마우스에 대해서 신약을 적용하는 실험입니다. 신약 개발을 위해 수백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1명의 임상시험 대상 환자를 선정한 뒤 그 환자에 적용되는 여러 가지 신약 후보군을 아바타 마우스에 심습니다. 백 가지 중에 하나가 효과가 있다고 판명되면 그것을 신약 개발로 연결시킵니다.”

 

 

난소암 신약 개발을 위해 많은 다국적 제약회사가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학문적인 면에서 볼 때 병원에 있는 의사들이 환자를 직접 접하고, 환자의 암 조직이나 혈액에 가장 접근이 쉬우므로 신약개발의 기초가 되는 연구를 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 이정원 교수의 설명이다.

 

프로젝트가 끝나는 2020년이 되면 삼성서울병원은 최소 20개 분야에서 세계 의료계를 선도하게 될 것이다. 계획대로 잘 진행되어 꿈의 신약들이 쏟아지는 2020년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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