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자녀양육 <신정근 칼럼>역자지교(易子之敎), 추궁하기보다 보듬는 부모 역할하기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
부모치고 자식이 잘못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틈이 날 때마다 부모는 자식에게 이런저런 좋은 소리를 하려고 한다. 
“인사를 잘 하라”, “자고 나면 이부자리를 정리 정돈하라”는 생활의 예절부터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마라”,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라”는 
공동체 생활의 규범까지 좋은 소리를 하려고 하면 끝이 없다.
아이들도 부모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이 정도까지 이야기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부모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부모는 자신이 말했으니 자신의 아이가 말을 들은 대로 행동하리라 기대를 하게 된다. 
기대를 하게 되면 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 입장은 다르다. 아이는 부모의 말을 듣고서 그럴 듯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행동이 말대로 쉽게 되지는 않는다. 
부모의 말대로 하려다가 좀 쑥스럽기도 하고 계면쩍기도 하여 주춤하다보니 인사의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바로 이 순간을 부모가 보게 된다고 하자. 
부모는 “인사를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로 따지게 되면 문제가 커진다. 
아이는 “이번에 못했지만 다음에 해야지!”라고 마음을 먹을 수 있지만 부모는 인사를 하지 않은 아이가 자신의 말을 귀담아 듣지도 않고 심지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를 꾸짖는 어른의 모습
어느 날 부모가 자신의 관찰을 바탕으로 “평소에 인사 잘 하라고 했는데, 너 전번에 누구한테 왜 인사하지 않았니?”라고 따지게 된다. 
아이는 뾰족하게 할 이유가 없으니 제대로 대구를 하지 않고 있으면 부모는 또 그 침묵에 화를 내게 된다. 이렇게 상황이 악화되면 아이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보다 부모의 잘잘못을 끄집어내게 된다. “부모님은 저더러 이래야 저래야 하면서 따지지만 정작 본인들도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일찍 귀가한다고 해놓고 늦게 오고, 담배를 끊는다고 약속해놓고 또 담배 피우지 않습니까?”
전국시대의 맹자는 부모가 자식을 직접 가르치기 어려운 문제를 알고 있었다. 제자 공손추가 물었다. “군자가 자식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맹자가 그 이유를 다음처럼 풀이했다. “사정상 제대로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사람은 반드시 올바른 기준을 내놓고서 그 기준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으면 화를 내며 추궁하게 된다. 화를 내며 추궁하게 되면 도리어 의가 상하게 된다. 또 자식은 ‘나를 올바른 기준으로 가르치지만 선생(부모)은 정작 올바른 기준대로 행동하지 않네!’고 생각하게 되면, 부모와 자식의 의가 상하게 된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의가 상하면 상황이 아주 나쁘게 된다. 그래서 옛날에 부모끼리 자식을 서로 바꾸어서 가르쳤던 것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는 선(善)을 가지고 서로 따지지 않는다. 선을 두고 서로 따지면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사이가 멀어지면 그것보다 좋지 않은 일이 없다.”(勢不行也. 敎者必以正, 以正不行, 繼之以怒. 繼之以怒, 則反夷矣. 夫子‘敎我以正, 夫子未出於正也!’, 則是父子相夷也. 父子相夷, 則惡矣. 古者易子而敎之. 父子之間, 不責善. 責善則離, 離則不祥莫大焉. 「이루(離婁)」상)
맹자의 말을 ‘역자지교(易子之敎)’ 또는 ‘역자이교(易子而敎)’라고 한다. 자칫 맹자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 부모가 자식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말고 침묵으로 일관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필요가 없다. 부모와 자식은 남들이 모르는 일상을 공유하는 아주 친밀한 사이다. 참으로 가까운 사람끼리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못했느냐?”를 따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합리적 객관성에 주목하기보다 서로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 있어?”라는 서운한 마음을 갖게 된다. 친한 사람에게 상처를 받으면 더 오래간다. 
우리는 지금 책선(責善)을 이유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게 아닐까?
 
[약력]
신정근 교수,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유학동양학부
- 주요저서 : 불혹, 세상에 혹하지 아니하리라. 21세기 북스
                    논어 -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랑이다, 한길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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