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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해외연수기

글 내용
제목 Yale-New Haven Hospital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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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과 의국의 배려로 2016년 9월 한 달간 미국 Yale-New Haven Hospital의 Psychological medicine department로 해외 연수를 다녀오게 되었다. 이곳은 Johns Hopkins Hospital에 계시던 이호창 교수님께서 옮겨 오면서 새로 설립된 department로, 우리나라로 따지면 정신건강의학과 협진이나 정신신체의학과 관련된 진료, 교육, 연구를 하고 있는 곳이다.

 방문할 연수 기관을 고민하던 중 작년에 이호창 교수님께서 본원에 방문하셨을 때 강의하셨던 내용을 인상 깊게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메일을 드렸고, 방문을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당시 강의의 주제는 Behavioral Intervention Team (BIT)이라는 것이었다. BIT는 기존의 협진 개념에서 한 발짝 나아가 타과에 입원하는 환자들을 전수 선별 조사하여 정신건강의학과적인 문제가 있으면 먼저 찾아가서 진료를 제공한다는 개념이었다. 전공의 수련 중 협진이 의뢰되었을 때, 직접 가서 병력 청취를 하면 나오는 입원 환자들의 무수한 정신과적 문제들이 의무기록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았던 적이 많았다. 문제가 심해지기 전까지는 많은 정신과적 문제들이 무시되거나, 혹은 정신보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 찾아내기 힘든 증상들이 많다는 증거였다. 그런 경험을 하면서 정신과 의사의 역할이 정신과 문제로 정신과에 내원한 환자를 보는 것만은 아니겠다고 느꼈었는데, 환자가 의뢰되기도 전에 먼저 찾아가서 문제를 밝혀내고 도움을 주는 방식이 협진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의학과 영역 전반에 있어서 의미 있는 발상인 것 같았다.

 방문한 Psychological medicine department는 상상 이상으로 큰 규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소속 교수님만 18분이었고 전임의 3명, 전공의 2년 차 2명이 배정되어 있었다. 심리학자 팀과 사회복지사만 해도 우리 병원 정신과 전체 소속 인원과 비슷한 수가 소속되어 있었는데, 의료에 투자되는 비용에 있어서 우리나라와 미국의 여건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BIT가 가지는 또 하나의 의미는 타과 입원 환자들의 평균 재원일수를 줄임으로써 병원에 재정적인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점이었는데, 최근 몇 년간의 투자 축소에도 불구하고 Psychological medicine department는 오히려 그 범위를 확장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BIT가 중점적으로 운영되는 병동은 일반 내과 환자들이 입원하는 곳으로, 놀랍게도 전문간호사들이 선별을 하면 절반 이상의 환자들이 여러 가지 정신건강의학과적 문제들을 호소하고 있었다. 환자들이 선별되면 매일 아침 회의를 통해 사회복지사만 개입하면 되는지, 의사의 진료가 필요한지 등을 결정해서 환자를 배정해 진료를 하고 있었다. 진료를 참관하면서 가장 신기했던 점은 한 환자를 교수님과 전임의, 사회복지사가 다 따로 가서 20~30분씩 면담을 하고, 서로 상의를 해서 치료 계획을 정하는 모습이었는데, 치료진 뿐만 아니라 환자도 그런 team approach를 매우 익숙하게 여기고 있었다. 한번 의뢰된 환자들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매일 회진을 하는 것도 큰 차이로 여겨졌는데, 우리 여건을 생각하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미국에도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병원이 위치한 코네티컷 주의 경우에는 보호자 없이 혼자 병원을 찾아오거나 경찰이 데리고 오는 환자들의 비율이 높은 편이고, 따라서 정신건강의학과 환자들의 병원 이용에 있어서 여러가지 의학적 판단을 할 능력이 있는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평가가 필요한 부분이 많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성년후견인 제도와 비슷한 conservatorship 제도가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역할이 정신감정을 하는 정도에 그치지만 이곳에서는 훨씬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사례들이 많았다. 환자 안전을 위해서 우리도 현존하는 제도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전반적으로 의뢰되는 이유는 비슷한 편이었지만 유독 차이 나는 부분이 있다면 약물 문제였는데, stimulant류의 마약 사용 환자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사례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고, 우리나라에 도입되지 않은 약물에 대한 경험들도 들을 수 있었다. 모든 환자에게 약물력이 있는지 자세히 물어보고, 자살사고가 의심되는 경우에는 집에 총기가 있는지 확인해 보는 모습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지역적 특색이기도 했지만 보호자가 없고 약물 문제가 엮여서 상황이 좋지 않은 환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주 진료과에서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개입해 주는 것에 대부분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셋째 주와 마지막 한 주는 클리닉들을 위주로 참관할 수 있었다. 다양한 영역에 전문화된 클리닉들이 있었는데, 제일 처음 참관한 외래는 Primary care center였다. 주로 타과에서 정신과 문제로 의뢰된 환자들을 보고 있었는데,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사회답게 다양한 문화적, 인종적 배경을 가진 환자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면담의 교과서적인 원칙을 지키면서 진료를 하는 모습을 보고 교육 병원 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만 수술 클리닉과 이식 수술 클리닉에서는 외과와 함께 팀을 이루어 클리닉에서 수술 전의 위험도를 평가하고 수술에 동의할 능력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들을 볼 수 있었다. 장기 이식 클리닉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지만 우리나라와는 달리 환자 본인이 어느 정도의 판단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수술의 방법과 결과에 대해서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철저하게 평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HIV 클리닉과 Sickle cell anemia 클리닉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환자들을 접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병원 생활과 더불어 가족과 함께 미국 동부의 일상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병원이 있는 뉴 헤이븐은 한때 미국 전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중 하나에 손꼽히는 곳이었지만 최근 몇년간 치안 문제가 많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번 연수에 아내와 아기를 동반해서 갔기 때문에 주방이 있는 숙소를 구하려고 인터넷 숙박 공유 사이트를 이용하였다. 다행히 시내에 있는 작은 아파트를 빌릴 수 있었고, 병원까지 걸어서 20분 정도면 갈 수 있었다. 주말에는 뉴욕과 보스턴까지 기차나 차를 빌려 2~3시간 정도면 다녀올 수 있었고, 뉴 헤이븐에도 예일대학교 캠퍼스나 미술관과 같이 둘러볼 곳들이 있어서 여가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진료를 보면서 내가 4년간 경험했던 것이 정신과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는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같은 병을 비슷한 약으로 치료하면서도 진료의 범위나 전달 방식을 바꿈으로써 정신과 의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아지는 것을 보고, 앞으로 내가 전문의가 된 이후에 어떤 역할을 할지 많은 고민을 할 수 있었다. 시간을 낼 수 있도록 배려해 준 의국과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준 병원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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