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완치된 환자보다 힘들었던 환자가 기억에 더 오래 남습니다 뼈아픈 경험을 발판 삼아 성장해 나가는 비뇨기과 서성일 교수
등록일 2015.09.17 조회수 5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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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난도 교수의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라는 책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흔들리지 않는 것이 어른이 아니라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그래, 조금 흔들려도 괜찮다. 나와 당신의 흔들림은 지극히 당연한 '어른 되기'의 여정이기에.’ 삼성서울병원 비뇨기과 서성일 교수도 그렇게 말한다. 전공의 1년 차에 하늘로 떠나보낸 가슴 아픈 환자와의 기억. 그때의 경험 덕에 배운 것이 많다고. 이후에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많이 배우고 흔들렸기에 현재 국내 최초, 최다 후복막강을 통한 로봇신장부분절제술과 최소 침습 로봇수술의 대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고.

자각증상 없고 다른 장기에 전이 잘 되는 악성암 ‘신장암’


흔히들 비뇨기과라고 하면 발기부전과 같은 성기능 장애를 비롯해 음경확대, 조루증 등 음경분야만을 다루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비뇨기과는 소변을 만들고 운반하고 배설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요로계(신장, 요관, 방광, 요도), 남성 생식기관(고환, 부고환, 사정관, 음낭, 음경) 및 부속성선(전립선, 정낭, 구요도선)과 부신에 생기는 질환을 모두 다룬다.
 

때문에 신장암 역시 비뇨기과에서 치료한다. 비뇨기과인 서성일 교수가 전립선암, 전립선비대증 등을 비롯해 신장암의 진료도 같이 보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신장암은 국내 발병률 10위 안에 드는 암이지만, 의외로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신장암은 발생하는 위치에 따라 신우암과 신세포암으로 구분하는데, 일반적으로 신장암이라고 하면 신세포암을 의미합니다.”
 

신장암은 암 중에서도 악성도가 높아 치료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것으로 유명하다. 초기에 자각 증상이 없다가 혈뇨나 허리 통증 등 실제적인 고통을 느낄 때면, 이미 다른 장기로 전이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신장암은 일단 진행되면 정맥혈관이나 림프절, 폐, 간, 뼈, 뇌, 피부 등 전방위적으로 전이되는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치료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과거에는 신장에 작은 암 덩어리만 발견돼도 신장 전체를 절제하는 ‘신장 완전 절제술’을 시행했다. 하지만 이제 의료수준이 발달해 개복 하에 시행하던 부분 절제술에서 나아가 복강경 부분절제술, 로봇보조 부분절제술 등 다양한 수술법으로 안전하게 암을 제거하고 있다.
 

“비뇨기과에 복강경 수술이 도입될 당시 마침 제가 전공의를 시작해 수술 조수로 참여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기존의 개복 수술은 손으로 하기 때문에 손이 크면 수술 때 힘들 수 있지만, 복강경 수술은 팔 길이가 길고 힘이 셀수록 기구들을 조작하기 좋다는 장점이 저와 잘 맞아떨어진 것 같습니다.”

 

서성일 교수는 국내 최초, 최다 후복막강을 통한 로봇신장부분절제술과 최소 침습 로봇수술의 대가로 유명하다.

 

전공의 1년 차에 떠나보낸 환자,
뼈아픈 기억이 나를 더 성장시켰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던가. 신장암, 전립선암, 방광암을 주로 보는 비뇨기과의 칼잡이 서성일 교수는 어렸을 때부터의 취미가 남달랐다.

 

“개구리를 잡아서 선생님들 교탁 밑에 넣어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하고, 직접 해부하면서 놀았습니다. 어린 시절 해부하는 것이 징그럽지 않고 오히려 즐겼던 걸 보면 의학 분야에 적성이 있었나 봅니다.”

 

그렇게 해부가 좋아 의사가 된 소년은 지금도 수술방에서 수술할 때 빨간 피를 보면 기분이 좋다고 말한다.

 

“수술할 때 빨간 피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선홍색의 출혈이 스며 나오면 수술 중인 환자의 상태가 양호하다는 뜻입니다. 만약 수술 중에 스며 나오는 출혈이 검붉은 빛을 띠면 마취된 환자의 호흡에 문제가 있거나 복강 내의 이산화탄소 압력이 높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물론 다량의 출혈은 곤란하지만, 환자 상태가 양호하다는 뜻을 나타내는 선홍빛을 띠는 피가 그래서 저는 좋습니다.”

 

수술이 좋고, 선홍빛 피가 좋은 천상 외과의사인 그에게도 수술에 대한 뼈아픈 기억이 자리한다.

 

?

 

“전공의 1년 차일 때 담당했던 전립선비대증 환자였던 할아버지가 수술 뒤 사망했던 적이 있습니다. 79세 고령이었지만 수술은 잘됐고, 회복기간을 거쳐 퇴원을 눈앞에 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5일째가 되던 날 수술 도중 갑자기 불려 나와 할아버지 환자의 심폐소생술(CPR)을 해야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서성일 교수는 어리둥절했다. 막상 가보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소생 가망이 희박해 호흡기를 단 채로 환자는 퇴원해 집으로 갔다. 그리고 그렇게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당시 할아버지 손녀가 의사였는데, 회복기간의 기록을 분석한 뒤 한 통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선배로서 말하자면 좀 더 세밀하게 지켜봤다면 돌아가시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수술 후 경과를 지켜보면서 놓친 것이 있었다 싶었습니다. 가슴 아픈 기억이지만 그 고통을 디딤돌로 한 단계 성숙해지기도 했습니다.”

 

그 편지의 끝에는 ‘훌륭한 의사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수십 년이 흘렀지만 서성일 교수는 언제나 그 편지를 떠올리며 항상 자신을 채찍질한다고 말했다.

 

“비뇨기과는 유독 고령의 환자분이 많습니다. 노령의 나이 탓에 젊은 사람보다 스스로 극복하기가 어렵다 보니 병이 악화되는 경우가 잦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완치된 수많은 환자보다 힘들었던 몇몇 환자들이 더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암 치료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의 의지
바쁜 일정에도 잘 치료된 모습 보면 뿌듯해

 

전립선암 수술 한 달 뒤 ‘소변이 항문으로 나오는 것 같다’며 되찾아 온 할아버지 환자도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 환자 중 하나다.

 

“내원 후 소변줄을 꽂고 한 달에 한 번씩 교체하면서 치유하는 기간을 가졌습니다. 이런 일은 환자가 불만을 느낄 법도 합니다. 때문에 제가 매번 소변줄을 직접 교체하면서 진료해드렸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꼼꼼히 환자를 돌본 끝에 할아버지는 완쾌했다. 그런데 그때 아까와는 반대로 서성일 교수가 편지를 썼다.

“복원수술을 마친 후 병원 측에 수술비용 감면을 요청하는 내용의 편지를 썼습니다. 병원에서 이를 받아들였지만, 할아버지가 펄쩍 뛰며 쫓아 오셨습니다. 혹시나 저에게 불이익이 있을까 봐 걱정을 하신 겁니다.”

진료며 수술이며 바쁜 일정에도 사람을 많이 만나고 치료하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낀다는 서성일 교수. 그는 환자들의 행복한 모습에서 활력을 얻는다.

“병을 치료할 때는 환자의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마음이 심약하면 작은 병도 커지기 마련입니다. 불필요한 희망을 줘선 안 되겠지만, 의지를 키워주는 것 또한 의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환자들에게도 가장 강조하는 것이 긍정적인 마인드입니다.”

뼈아픈 경험을 겪은 뒤 환자들의 사소한 것까지 챙겨주는 배려의 아이콘으로 거듭난 서성일 교수.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환자들에게 희망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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